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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바루 =봉춘홍=혀경영

분류없음 2011/07/25 19:09 Posted by 봉춘홍
중년의 터닝포인트]<7>심바루 씨- 회사 사장서 종합예술인으로
2009-03-31 20:55 2009-03-31 20:55 여성 | 남성
** 이 기사는 저널로그 기자 블로그에 등록된 글입니다 **

심준보 또는 에릭심 또는 심바루 씨(48). 그를 만났을 땐 약간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삶 자체가 무대"라고 주장하면서 그가 쏟아놓은 말들이 너무 솔직한데다 그의 행보도 희한했기 때문이다. 2005년부터 그가 속내를 기록해둔 싸이 홈피를 보고서야 그의 말을 믿게 되었다는 것을 고백해야 하겠다.

AT&T, 워너 브러더스, 노텔, 노키아 등 외국계 회사에서 줄곧 일해 온 그는 2007년 사이베이스365 동북아시아 사장을 마지막으로 20년간의 직장생활을 청산한 뒤 자칭 '종합예술인'으로 변신했다.



지난해 11월 배우 출신 미술작가인 강리나 씨(45)와 함께 '외계인 출입금지'라는 제목으로 첫 전시회를 가졌고, '봉춘홍 밴드'를 결성해 공연을 다니고 있으며, 강리나, 뮤지컬배우 김선경 씨와 함께 '지구방위대'를 만들어 환경을 주제로 한 퍼포먼스를 기획 중이다.

외국계 회사에서 승승장구하며 "누릴 만큼 누려봤다"는 그는 이제 자신의 삶에서 '성공'과 '풍요'는 더 이상 중요한 가치가 아니라고 단언했다. "재미있고, 특이하고, 용감하게" 사는 게 삶의 목적이라고 했다. 인터뷰를 마칠 때쯤 그의 말에 동의할 수 있었다. 그는 '재미'있고 '특이'하고 '용기'있는 심바루 씨였다.

● '가짜인 삶'에서 벗어나기

자신의 과거를 그는 "쓰레기"라고 표현했다. 오죽하면 인터뷰 도중에 '아, 왜 그러세요'하고 말리고 싶을 정도였다.

그가 설명해준 이력을 들여다보면 이렇다. 부유한 집 아들로 10대 때부터 '날라리'였고, 1981년 미달된 외국어대 영어과에 운 좋게 들어갔다.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문무대 입소 훈련 도중 "의식도 없는데 그냥 친구들이 맞는 게 화가 나서" 인권 유린성 훈련에 항의하는 시위에 참가했다가 두 달 뒤 징계퇴학을 당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TV오락프로그램인 '영11'에 개그맨으로 출연하고 장발에 흰색 디스코 바지를 입고 싸돌아다니던 그를 보고, 어느 날 어머니가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고 한다. 

"넌 나가는 게 좋겠다…."

그렇게 미국 뉴저지 주립대에 유학을 가게 됐다. '에릭심'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에 돌아온 뒤 AT&T 한국지사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고 외국계 회사에 다니며 '수직상승인생'을 살았다. 

"조직생활도 싫고 적성에 맞질 않았지만 돈이 좋아서 참고" 회사를 다녔다고 한다. 늘 "내 삶은 가짜"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으면서도, 고급 차에 고급 양복을 입고 가진 것을 남과 비교하며 우월감과 열등감 사이를 오락가락했다. 그렇게 살던 스스로를 어찌나 경멸했던지 그는 "난 상류인 척 위장하고 쾌락을 좇던 쓰레기였다"고까지 말했다.

왜 진작 방향을 바꾸지 않았느냐고 그에게 캐묻다가 다른 이유도 듣게 됐다. 그의 큰아들은 자폐증을 앓고 있다. "큰아들이 잘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안심할 수준이 될 때까진" 돈을 벌어야 했다. "자폐아에겐 한국이 힘든 사회"여서 2005년 그의 가족은 캐나다로 이민을 갔고, 그는 2년간 매일 전화로 아내를 설득한 끝에 2007년 11월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만두겠다고 노래를 불렀건만 정작 46살의 나이에 안정된 직장을 떠나는 건 그에게도 겁나는 일이었다.

"그만두기 직전, 원형탈모가 5군데나 생겼어요. 머리에 주사를 맞는 치료를 받는데 처음엔 너무 아파도 맞고 나니 견딜만하더라고요. 그만두는 것도 마찬가지 아닐까 생각했죠. 지금은 두렵지만 저지르고 나면 견딜만하지 않을까 하고. 그래서 결심할 수 있었지요."




● "세상에 장난을 거는 게 재미있다"

회사를 그만둔 뒤 처음 두 달간은 후회막심이었다고 한다.

"비서도 없고, 기사도 없고, 그야말로 '노바디'가 되어버렸으니까요. 늘 대접받고 살아서 사람들이 원래 그렇게 친절한 줄 알았는데 나와 보니 그렇지 않더라고요. 세상 참 터프하더군요."

요리사가 되려고 캐나다에서 요리를 배우면서도 내면에서 들끓던 표현의 욕구가 가라앉지 않았다. 

노키아에 다닐 때도 그는 3년간 주말마다 이태원 게이클럽에서 DJ로 일했고 틈틈이 영화 단역으로도 출연했다. '스캔들-남녀상열지사'에선 중국인 신부,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에선 게이 구둣방 주인 역을 맡았다. '다세포소녀'에서 맡은 변태 역할은 "최고의 연기였는데 편집 과정에서 잘려버렸다"고 한다.

2005년 가족이 캐나다로 이민간 뒤에는 분당에 프렌치 레스토랑인 '살롱 드 춘자'를 열었다. "지금은 다른 사람에게 넘겼지만 '게이 필'이 나는 인테리어를 직접 하면서 너무 즐거웠다"고 한다.

'요리사'로만 살기엔 표현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 고민하던 그는 결국 아내에게 재산을 다 넘기고 "3년만 군대에 다녀올게"하고 약속한 뒤 2008년 9월 다시 한국에 돌아왔다. 

그는 지금은 아버지와 둘이서 지내며 아내가 한달에 30만원씩 보내주는 용돈으로 산다. 고급 양복 대신 헌옷 수거함에서 주운 예비군복을 입고, 한때 푹 빠졌던 BMW 오토바이 대신 스쿠터를 탄다. 

"주말엔 가끔 바지 위에 치마를 입는다"고 해서 내가 폭소를 터뜨리자 그는 한술 더 떠 "성남 모란시장에서 산 털신이 치마와 얼마나 잘 어울리는 줄 아느냐"고 자랑했다. 내가 황당해하는 것처럼 보였던지 그가 혼잣말처럼 "남들은 다 꿀꿀하다고 하는데 난 왜 행복하지"하고 중얼거리더니 이렇게 덧붙였다.

"예전에는 피곤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 더 피곤하게 살았는데, 지금은 그런 게 없어서 얼마나 좋은데요. 난 웃기는 게 좋아요. 큰아들의 장애 때문에 집안이 어두워지지 않게 하려고 집에서도 늘 웃고 까부는 게 버릇이 됐어요. 내가 이 세상에 거는 장난이 너무 재미있어요!"

● 공식 대신 '아트'로 살리라

그가 강리나 김선경과 함께 만든 '지구방위대'는 음식물 쓰레기 줄이기, 재사용, 많이 걷기 등 일상에서 실천 가능한 환경보호를 주제로 전시 퍼포먼스를 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는 공연에 쓸 돈을 벌기 위해 한 통신회사에 투자했고 캐나다에서 생수를 수입하는 사업도 시작했다. 소득의 10%를 공연에 쓸 계획이며 사업이 본 궤도에 오르면 환경보호를 위한 비영리 활동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삶의 목적이 '재미'라고 누누이 강조한 것처럼 사소한 일 하나도 그는 남들과 똑같은 걸 못 견딘다. '심바루'라는 예명은 '똑바루 살자'에서 따왔고, 명함이라면서 '심바루, 배우, 종합예술인'이라고 판 도장을 꾹 찍은 재생용지조각을 아무렇지도 않게 건넸다. 밴드의 이름을 지을 때도 가장 촌스러운 세 글자를 찾기 위해 고심하다 '봉' '춘' '홍'이 각각 떠올라 그걸로 작명했다고 한다.

"무슨 일을 하든 난 아티스트예요. 환경을 주제로, 요리와 공연, 미술을 키워드로 삼아 작업할 겁니다. 지금까진 공식에 맞춰 살아왔어요. 능력 있는 남자, 예쁜 여자를 선호하는 것도 자손 번식의 본능 때문이라고들 하잖아요? 생존과 번식, 그 공식은 이제 나한테서는 끝났어요. 그 숙제는 다 했으니 이제 뭐든 마음 가는 대로, '아트'로 살래요."

묻지 않던 말까지 술술 털어놓던 끝에 그가 선언하듯 '공식 대신 아트'를 강조했다. 그의 웃는 얼굴을 보면서 생각했다. 정말로 자유롭지 않으면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없는 법이라고.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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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없음 2011/07/25 19:05 Posted by 봉춘홍




Art Chef?
‘아트 셰프’라는 수식어를 듣는 순간 솔직히 ‘뭐래?’ 했다. 자기 요리에 스스로 ‘아트’를 붙이다니 웬 자만인가 싶었다. 그런데 직접 아트 셰프 봉춘홍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 본 후 곡해했음을 고개 숙여 사과했다. 아트 셰프란 내가 선입견을 가졌듯 요리를 시각적으로 멋지게 만들어 다른 사람에 예술적 감흥을 주는 그런 직업이 아니다. 아트 셰프는 공정한 방법으로 생산된 좋은 재료를 가장 신선한 때에 정직한 방법으로 전해주고, 음식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대중과 대화하는 이다. 즉 요리는 시각적인 전시가 아닌 퍼포먼스이며, 설치미술의 피날레이며 화룡점정인 것이다. 특히 요리라는 퍼포먼스는 가장 낮은 곳에서 상대방을 섬길 때만 할 수 있는 가장 겸손한 퍼포먼스이기에 뜻 깊다. Photo Studio Zip(김재윤 포토그래퍼)


LESS EVIL FOOD
사실 기본적인 인간의 욕구는 기업의 탐욕보다 더 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우리는 사납고 강한 자들이 맛나고 귀한 것을 모두 먹어 치우고 남은 음식을 쓰레기통으로 보내는 그런 세상에 살고 있다. 과연 사악해지지 않고서는 맛난 음식을 먹기 힘든 걸까?
‘Less Evil Food’는 최대한 덜 사악하며, 덜 비인도적인 방법으로 사육 재배된 재료를 공정한 방법으로 거래하여 제공하는 음식이다. 봉춘홍은 모든 생물을 존중하고 그들과 화합하는 양심적인 사회를 꿈꾼다

요리
동네에서 구하기 힘들거나 너무 비싼 재료 일 경우 대체용품을 쓴다. 저렴한 재료라도 창의적인 노력을 기울이면 동네에서 구한 재료로도 서울 청담동 식당에 못지않은 맛과 멋을 얼마든지 낼 수 있다. 그런 소박하지만 멋을 아는 식당들이 곳곳에 생겨 누구나 좋은 음식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게, 그리고 그런 요리법을 널리 알려 모든 이들이 집에서 멋진 음식을 즐길 수 있었으면 하는게 봉춘홍의 꿈이다. Writer 봉춘홍

뉴잉글랜드 클램 차우더
갑자기 날씨가 추워졌다. 손님들에게 따뜻한 국물을 드리고 싶어 파트너 셰프에게 오늘 수프는 무료로 내자는 동의를 얻었으나 일단 싱싱한 조개 관자를 저렴한 가격에 구할 수가 없었다. 또한 동네 마트에는 생크림이 없었다. 그래서 지난번 냉동 관자를
해동하여 감자를 삶아 올리브유에 볶다가 노릇이 구워질 즈음 우유를 넣어 끓였다. 추운 날의 수프는 요리사의 따뜻한 마음이다.

연어 샐러드
훈제 연어를 대량으로 사는 경우 연어가 껍질채로 온다. 그런 경우 대부분 연어를 슬라이스하고 남은 껍질을 버리게
되는데 이를 활용 하고 싶었다. 그래서 약간의 살이 붙은 연어 껍질을 레몬과 버터를 섞어 구웠고, 이를 감자와 삶은 계란을 마요네즈에 버무린 감자 샐러드 위에 얹어 소량의 베이비 리프에 발사믹 소스를 곁들였다. 사람들은 멋지고 맛있는 것을 아무 생각없이 늘 그래왔다는 이유로 버리고 산다.


필라델피아 치즈버거
햄버거를 준비하며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은 고기다. 원래의 맛도,인도적인 측면도 포기할 수가 없어서 블랙 앵거스의 립 아이를 사용하였다. 맛을 유지하기 위해 갈지 않고 칼을 사용하였다. 고기에는 후추와 가쓰오 간장, 그리고 바비큐용 허브(후추와 바질 등의 허브 믹스로 맛에 별 영향을 주진 않는다)를 섞어 15분간 고기를 재웠다. 치즈가 가장 맛이 있을 때는 불과 만나 녹여졌을 때다. 양파와 느타리버섯을 잘게 채쳐 체다 치즈를 뿌리면 서로 맛이 보강된다.


이곳은 식당이라기보다는 문화 공간이다. 하우스 콘서트와 다양한 아트, 문화 세미나와 강좌들이 기다리고 있으며, 각 지역 농부들과 예술작가들의 물물교환 장터를 만들어 “예술가가에게는 식량을,농부들에게는 예술을”이라는 이벤트도 기획 중이다.
물물교환 벼룩시장 또한 이대 앞 옷가게 골목에서 열 예정이다. (메리메리 02-312-6209)



메리메리
‘메리메리’는 Less Evil Food 식당이다. ‘메리메리’ 에서는 콜라도 사이다도 팔지 않는다. 대기업에 의해 대규모 유통되는 과일 주스도 팔지 않으며, 맥주나 와인도 음료의 수준을 넘는 일인당 한 병 이상은 팔지 않는다. 식재료도 재벌들에 의해 유통 되는 대형 마트보다는 지역 재래시장이나 국내 이주노동자들이 여는 안산 시장을 이용한다.

재활용 인테리어
조각가, 사진작가, 설치작가들이 직접 재활용 재료를 구해 만들었다. 의자는 바닥재로 만들었고, 작은 원목 조각을 일일이 붙여 벽을 만들고, 테이블도 자작나무로 직접 제작했다. 전등과 샹들리에는 일산 공사장에서 폐기물 등을 얻어 문래동 철공소에서 제작했다. 따라서 이곳은 설치미술 전시공간이며 요리는 설치미술을 완성하는 마지막 설치품이 된다. 이곳에서는 새 물건은 찾아보기 힘들다. 의자, 에어컨, 주방기기, 모두가 중고이며 가스레인지와 냉장고는 집에서 쓰던 걸 내왔다. 또한 물물교환을 통해 필요한 것을 얻으려 노력한다. 벽에 걸린 사진도 후배 작가에게 햄버거 200백 개를 주기로 하고 얻어온 작품이다. 앞으로 그 후배가 먹어야 할 햄버거는 198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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